우리가 사랑한 것들을 떠나보내는 데는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진짜 지난번 뮤비만 만들고 끝내려고 했는데, ㅠ_ㅠ 또 맘대로 손이 움직여서 하나 더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잉여짓이 되길 바라며... 어린 나이에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독한 길을 걷게 된 택이지만, 항상 쌍문동 5인방과 함께여서 덜 외로웠다고 생각한다. 최택의 모델인 이창호 9단도 인터뷰에서 택이에게 친구가 많은 것이 부럽다고 하셨다던데. 특히 대국에서 지고 온 날, 다들 조심조심 택이의 눈치만 살피는데, 이 친구들은 거침없이 들어와 "너 발렸다며, 질때도 됐어"하고 면박주면서 "차라리 욕을 해"하고 택이를 터뜨려 주는 장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좋은 친구들이 있는 택이가 진심 부러웠다. 후반부에 남편찾기에 다들 ..
응팔 때문에 내 평생 처음으로 팬뮤비까지 만드는 덕질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뮤비를 편집하다가 불현듯 깨닫게 된 점이 있었다. 덕선이와 정팔이가 마주보고 웃는 투샷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둘만의 예쁜 장면도 좀 넣어주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정환이는 덕선이를 몰래 훔쳐보고, 뒤돌아서 웃음짓는다. 덕선이가 정환이를 향해서 웃을 때는 정환이가 딴 데를 본다. 둘은 시선을 마주치며 웃는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클립을 모아놓고 보니 전형적인 짝사랑男의 시선인 것이다. 반면에 택이와 덕선이는 주요 회차마다 둘이 마주보고 웃는 장면이 꼭 나온다. 정환이의 마음을 알게 된 택이 결국 고백을 포기하고 수면제를 먹고 잠으로 도망치는 16화의 엔딩을 보며, 둘이 이어지지 않을 것을 예감한..
‘응답하라1988’의 남편찾기 대장정이 끝나고 쏟아져 나온 기사들을 봤는데, 다들 예상치 못한 결말에 당황하는 듯하다. 사실상 정환이가 피앙세 반지를 던져놓고 가는 18화 엔딩에서 게임은 끝이었다. 그런데도 내 주변의 정환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19화에 반전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고, 20화가 끝나고는 “중간에 작가들이 남편을 바꾼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제기했다. 아무래도 정환이에게 감정이입을 한 사람들은 이 흐름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나는 3화까지는 좀 대충대충 봤다. 그랬던 이유는 1~2화에 ‘어머니의 죽음’ 같은 눈물 빼는 묵직한 에피소드가 연이어 나오는데 반해, 아직 캐릭터들이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은 상태라 몰입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환이의 서사에 깊이 빠지지 ..
응답하라 1988에 뒤늦게 빠져서 내가 평생 안하던 짓을 했다. 백만년만에 동영상 편집기를 열고, 팬메이드 뮤직비디오를 만든 것이다. 사실 나이로 따지면 '응답하라 1997'에 가깝고, 배경으로 따지면 '응답하라 1994'가 모교 배경이라 그 둘에 열광할 법도 했는데 크게 빠지지는 않았었다. '응답하라 1994'때는 동문들이 페이스북에 매일같이 응사 얘기로 달렸던 것 같은데 그때도 나는 별로 반응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랑 관련없는 응팔에 이렇게 빠지게 될지 몰랐다. 3회까지는 보다 말다 띄엄 띄엄 봐서 기억도 잘 안난다. 그런데 회차가 거듭될 수록 서서히 빠져들더니 16화가 끝나고 결방했을 무렵에는 아, 이게 흔히들 말하는 덕통사고라는 거구나 싶었다. 17화를 기다리는 2주 동안 가슴이 두근거리고 음악..
일요일, 아파서 집에서 뒹굴거리며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다가올레TV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영화 '백야'를 보았다.워낙 오래된 영화라서어딘지 연극같은 데가 있고갈등구조도 단순하긴 한데주인공들이 추는 춤이 너무 멋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중력을 거부하고 날아오르려고 하는 듯한 발레리노의 몸짓,그 모든 노력이 배어있는 듯한 단단한 근육.그리고, 춤추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흑인 탭댄서의 신들린듯한 몸놀림.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주인공 니콜라이가 옛애인이자 지금은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바노바에게 찾아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며, 그녀 앞에서 소비에트 정부가 금지한 춤을 열정적으로 추는 장면이었다.이바노바는 자신을 배신하고 서방세계로 떠난 니콜라이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그 춤을 보고 눈물을 멈추지 못하며 그가 소련을 ..
청춘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야 해 어수선한 작업실, 졸업을 언제할지 알 수 없는 고학번 선배, 시간제 아르바이트, 돌려받지 못할 짝사랑, 진로에 대한 고민들.. 허니와 클로버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바로 '지금'의 대학생들의 모습이고, 누구든 스무 살에 겪어볼만한 고민들이다. 마야마와 아유미가 스토킹하다 마주치는 장면처럼, 성격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사건들은 소소하면서도 특별하다. 그림이라는 소재가 사랑의 매개물이 되면서 동시에 장애물이 되는 장치도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모든 젊은이들이 그러하듯이, 꿈꾸고, 사랑하고, 절망하고, 다시 희망을 갖는다. "청춘영화란 이렇게 만들어야 해" 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친구에게 말했다. 마치 청춘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잘라 옮겨놓은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