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말 열렸던 32pages의 전시회. 32pages는 신설화, 지남희, 박소하다, 이선정 - 4명의 작가가(최근에는 한 명 추가된 듯)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32쪽짜리 책을 출판하는 자가출판 프로젝트. 이번이 5번째 출판이다. 내가 그녀들을 만났던 것은 그들이 막 첫 책을 출판했던 2008년이었다. 홍대앞 골목을 구비구비 돌아 도착한 박소하다의 작업실,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작업실이었는데 여름이 시작되던 참이라 박소하다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타를 치며 아직 오지 않은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남희씨는 박소하다의 파마머리에 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그 소리가 동네 꼬마들과 노인들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골목에 울려 퍼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과 설..
달려라 달려 달달달”, 후배가 공연하는 아동극을 보러갔다. 가족극이라고 했지만, 결국 아동대상이겠지 싶어서 쉽게 생각하고 갔는데, 오...한방 먹었다. 물론, 너무나 쉽고 즐겁고 재미있었지만, 이름도 모르는 옆자리에 앉은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 웃고, 노래부르고, 감동 잔뜩 받고 나오면서, 아동극이란 이름에 얕본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서양의 연극전통과 우리의 연극전통은 매우 다르다. 서양 연극은 전통적으로 제 4의 벽이라 불리우는 가상의 벽이 존재한다. 그것은, 극중인물들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과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벽으로, 관객들은 그 벽 너머에 있는 극중인물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극에서는 이런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희자는 끊임없이 관객과 소통한다. “이 내 말..
요새 카툰 수업을 듣고 있다. 고등학교때는 그래도 교과서에 낙서를 끄적끄적 많이 했는데, 결벽증이 있어서 공부를 하려면 낙서를 다 지워야 공부를 시작할수 있었다. 낙서를 지우다가 지쳐서 공부도 못하고 잠들고... 그래서, 공부한답시고, 손을 봉인해버렸다. 결국 공부도 안했으면서 왜그랬나 모르겠다. 수업시간에 5~10분씩 크로키를 한다. 크로키라고는 하지만, 그리는 방법은 자기 마음대로이다. 시간제한이 있을뿐. 내가 그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어서, 낯선 선들이 나온다. 그림을 들여다 보고있으면, 다른 사람이 그린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진다. 나는 이런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더욱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은 왼손그리기. 크로키 시간 중에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간이 있다. 내가 아무리 그림에 경험이 없는 사..
광고회사를 다니던 때 서점에서 최민식의 사진집을 우연히 보았다. 한 페이지를 넘겼을 때, 거리 모퉁이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꼬마아이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렸다. 서점에서 주책맞게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뭐,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거라면 뻥이겠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는 없다. 그는, 남루하고, 비루한 육체를 입고 있는 인간존재의 반짝임을 한결같이 지치지 않는 열정과 연민으로 찾아내고 있었다. 사진이 어떻고 저떻고를 떠나서 이런 태도가 바로 거장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