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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극이라고 쉽게 봤다가 한방 먹은 날

d u s t y s n o b 2008. 7. 1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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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달려 달달달”, 후배가 공연하는 아동극을 보러갔다. 가족극이라고 했지만, 결국 아동대상이겠지 싶어서 쉽게 생각하고 갔는데, 오...한방 먹었다. 물론, 너무나 쉽고 즐겁고 재미있었지만, 이름도 모르는 옆자리에 앉은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 웃고, 노래부르고, 감동 잔뜩 받고 나오면서, 아동극이란 이름에 얕본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서양의 연극전통과 우리의 연극전통은 매우 다르다. 서양 연극은 전통적으로 제 4의 벽이라 불리우는 가상의 벽이 존재한다. 그것은, 극중인물들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과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벽으로, 관객들은 그 벽 너머에 있는 극중인물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극에서는 이런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희자는 끊임없이 관객과 소통한다. “이 내 말 좀 들어보소~”하며 사설을 시작하는 창자는 관객에서 직접 말을 걸고, 관객들은 “얼쑤~” “잘한다~” 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이런 상호작용들까지 모두  우리 전통극을 이루는 요소들인 것이다.


 

요새는 판소리도 서양의 프로시니엄 아치 무대를 가진 공연장에서 엄숙하게 공연되기도 하지만, 원래 판소리는 창자가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관객과 무대, 관객과 연희자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극형식이다. 그것은 흡사 건넌마을의 불구경을 실감나게 전해주는 이야기꾼과 그 둘레에 모여있는 호기심 가득한 구경꾼들 사이에 일어나는 교감와 같은 것이다.


 

“달려라 달려 달달달”은 판소리는 아니지만, 이러한 판소리의 전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여낸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 명의 배우가 주위에 둘러앉은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걸어 이야기를 들려주고, 같이 노래부르게 하며, 혼자서 암행어사도 되었다가, 악한도 되었다가, 이야기꾼도 되었다 한다. 구석에 앉은 고수는 북과 양금 등의 다양한 악기로 바람소리도 내고, 발자국 소리도 낸다.


 

또한, 창작극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우리나라 전통문학, 설화, 민담에 등장하는 원형들을 풍부하게 끌어들인다. 예를 들어, 유씨부인을 취하려는 구씨의 이야기는 도미 설화의 변형이며, 이를 해결해주는 박문수의 등장은 암행어사 박문수의 직접인용인 동시에, 춘향전의 결말의 변형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풍부하게 끌어들인 전통문학의 원형 덕분에, “달려라 달려 달달”은 짧은 상연시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깊이 자극시킨다. 나는, 유씨부인을 빼앗으려는 구씨의 이야기에서,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하다 눈을 잃고 도망친 도미와 그의 아내를 떠올리고 눈물이 핑 돌아버렸다. 아.. 나는 그제서 깨달았다. 우리 전통 구비문학이 왜 해피엔딩을 가지고 있는지.. 연희자가 이렇게 관객과 눈을 맞추며 그들의 감정을 쥐락펴락 하는데, 한민족의 인정상 슬프게 끝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할지라도, 여기서만은 연희자가 몰고간 그들의 슬픈 감정을 풀어주어야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극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배우의 유연성있는 뛰어난 연기력, 요즈음의 코미디에서 빌어온 개그코드, “달려라 달려 달달달”이라는 관객들이 따라 부르기 쉽게 만든 가락 등은 관객들에게 ‘현대적인’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요소들이다. 전통극의 영향인 지방 사투리나 한자어 등은 아이들이 100%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수도 있으나, 아동극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은 즉각적인 이해가 아닐 것이다.

 

 

지금에 와서 내가 어린 시절 읽은 동화들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정말로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에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읽었던 상징과 은유가 풍부한 이야기들이다. 엘리너 파아존이 쓴 동화며,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스 로마신화 등.. 이런 이야기들은 내 기억 속에 묻혀있다가, 살면서 어느 순간에 문득 떠오르며, 그 밑바닥의 함의까지 한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들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보물들이다. 쉽게 읽힌 동화들은 쉽게 잊혀진다.

 

 

마찬가지로, 즉시 이해되지만 층이 얇은 내용의 극은 당시에는 아이들이 즐거워할지 몰라도 금새 잊혀진다. 내 어린시절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달려라 달려 달달달”이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교훈이 아니라, 우리 전통문학과 극형식을 몸으로 직접 느끼는 즐거운 경험과 정서적 체험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이제껏 읽은 수십 편의 전래동화들은, 이 극 한편의 경험으로 인해 감각으로 전이되어 아이들의 기억과 무의식에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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