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쓰는 포스트. 조리도구 살 때 디자인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타입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레시도 사고 싶었고지안니나도 사고 싶었는데 매일 모카포트 여러 개를 쓰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예쁜 것보다 본연의 기능이 좋은 것에 두고두고 감탄하게 된다. 모카포트는 당연히 에스프레소 머신과 비교할 수 없지만 브리카는 좀 낫다. 압력추가 누르고 있다가 퍽! 하고 올라오는 순간 느낄 수 있다. 아 이걸 이길 모카포트는 없겠구나. 그럴 때 뚜껑을 열어보면 뽀얀 크레마가 덮여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래서 무슨 말이냐면, 모카포트는 다 필요없고 비알레띠 브리카. 이 말이 하고 싶었다고. 물론 어차피 물타먹을 거라 상관없다, 난 커피 맛 차이를 따지지 않는다, 등등의 분들은 예쁜 걸로 사면 된다. ..
그동안 좀 아팠다. 크다면 크다 할 수 있는 수술을 하고, 다리도 다쳐서 못 움직이고 집에만 있으면서 마음이 점점 무너져내렸다. 나이를 먹으며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그렇게나 나약한 것이어서 배가 고프거나 몸이 아프면 금방 바닥으로 떨어져버리는 것이었다. 몸이 회복되고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오며 마음도 좀 챙겨보려고 우쿨렐레를 샀다. 택배로 우쿨렐레가 도착하기 전까지 두근두근해서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나 원래 택배에 설레는 타입 전혀 아닌데.. 아마도 택배기사가 직접 전해줬다면 아저씨를 껴안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택배함으로 도착. 남편은 아끼는 것들에 이름 붙여주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남편의 기타는 ‘파주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십여 년 전, 시골 같았던 파주 교외의 공방에 주문해둔 기타를..
화제작 '주전장'을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것들. 1.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이 하는 발언은 꽃뱀무새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돈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매춘부다." "주말에는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즐길 수 있었으므로 성노예가 아니다." 영화에서는 이 주장들에 대해 "1억엔을 받았다고 해도 성노예는 성노예다." 라고 분명하게 반박하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예'의 정의에 대해 말한다. 인간이 물건으로 취급되며, 자유의지와 인권을 박탈당한 상태를 말한다고. 돈을 받고 주말에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군통제 하에 있었으므로 노예라고. 그런데 이 정의를 듣다보니, 점점 이건 매매춘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매매춘 산업에서 성매매여성은 물건으로 취급되고,..
얼마전 헬카페에서 원두를 사왔다. ‘하리오’로 내려 마신다고 하자, 사장님이 이 원두는 머신에 맞춰서 로스팅한 거라 수율이 높지 않으니 물을 뜨겁게 팔팔 끓여 브루잉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집에 와서 그대로 내리니 헬카페 커피와 얼추 비슷한 맛이 났다. 하지만 왠지 이 원두 본연의 맛을 다 끌어내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에스프레소로 마시고 싶은 욕구가 점점 강렬해지고... 결국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비알레띠 미니 익스프레스(Bialetti mini express)를 사달라고 하여 한달 앞서 땡겨 받았다. 아. 이 특이한 포트를 처음 본 순간 완전 꽂혀버렸다. 모양이 일반 모카포트와 좀 다르게 생겼는데, 잔을 보일러 위 플랫폼에 직접 올려놓고 바로 커피를 받는 구조로 되어있다. 덕분에 잔..
한국 사람들은 스몰톡을 안한다지만, 한국 할머니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단 둘이 있게 될 때 모르는 할머니들이 꼭 내게 말을 거신다. 오늘도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래층에서 탄 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보며 스몰톡을 시작하셨다. “스카프를 두르고 나와야지 하다가도 매번 까먹고, 밖에 나와서 추우면 그제야 생각나네.” 나는 그러시냐고 조그맣게 대답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스몰톡으로는 너무 무거운 말씀으로 훅 치고 들어오셨다. “늙으면 쓸모도 없고 죽기나 해야지. 아이구.”아… 내가 뭐라 할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자, 할머니는 똑같은 말을 한번 더 하셨다. 그래서 나는 미소만 짓다가 내릴 때, “보라색이 너무 잘어울리세요.”하고 입고계신 옷을 칭찬했다. 사실은 ‘새하..
그동안 나는 대중에게 외면받는 분야일수록 이너서클 권력자들의 횡포가 세다고 생각했다. 그 장르를 소비하지 않는 대중에게는 권력이 없기 때문에 칼자루가 소수의 권력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윤택과 일련의 연극, 문화계 성폭력 릴레이를 보면서 내가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알탕 성폭력 카르텔이 재능있는 여성들을 그 분야에서 축출해냄으로써 그 장르가 질적으로 저하된 것이 먼저이고, 그래서 대중들이 떠나게 된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문학이, 연극이 흥하였던 시대도 분명 있었는데 말이다. 문화의 주소비층이 여성인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레진 사태 등을 보면서, 이걸 지금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만화계도 그 길을 걸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한창 문닫는 비디오가게가 속출하던 시기가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동네에 문닫는 가게가 폐업정리 세일을 하면 가서 비디오테입들을 하나둘씩 사모으곤 했었다. 비디오테입을 살때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는데, 1) 비싼 건 사지 않는다 2) 좋아하는 배우의 작품은 무조건 산다 3) 어릴 때 좋아했던 영화라면 산다 4) 앞으로 dvd로 발매될 일 없을 것 같은 안 유명한 영화도 산다. 비싼 걸 사지 않은 이유는, 대개 비싼 건 누구나 아는 명작들인데 그런건 dvd로 틀림없이 발매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화질 안좋은 vhs를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으로 구매해선지 다락방을 뒤져 오랜만에 들춰본 나의 비디오 컬렉션은 이거 어디다 팔기도 뭐하고,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영화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