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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장

d u s t y s n o b 2019.08.23 16:43

화제작 '주전장'을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것들. 

 

 

1.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이 하는 발언은 꽃뱀무새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돈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매춘부다."

"주말에는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즐길 수 있었으므로 성노예가 아니다."

 

영화에서는 이 주장들에 대해

"1억엔을 받았다고 해도 성노예는 성노예다."

라고 분명하게 반박하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예'의 정의에 대해 말한다.

인간이 물건으로 취급되며, 자유의지와 인권을 박탈당한 상태를 말한다고. 

돈을 받고 주말에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군통제 하에 있었으므로 노예라고.

 

그런데 이 정의를 듣다보니, 점점 이건 매매춘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매매춘 산업에서 성매매여성은 물건으로 취급되고,

종종 자유의지를 박탈당한다. (한국에서는 대개 강제로 고리의 빚을 지게 하는 식으로 통제가 이루어진다.)

영화를 볼수록 매매춘 역시 반인권적인 범죄행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역사왜곡의 핵심 주도세력인 '일본회의'의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여성 기자가

난징학살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보고 충격받아 양심선언을 했는데,

그 분 말이 인상적이었다.

 

"(역사 왜곡과 부정은) 자아실현과 관계있다.

일본 역사의 과오에 대해 들을 때, 

나 자신이 공격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국가에 자아를 의탁하는 경우

이런 결과가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예전에 나는, 한 독일 분한테서

'유럽에서도 유난히 독일청소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신 걸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왜일까 생각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조국이 과거에 저지른 전쟁범죄를 계속 배우게 되면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없는 괴로움에 빠지는 시기를 필연적으로 겪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영화를 볼 때, 착한 편, 주인공 편에 감정이입하지

악한편, 지는 편에 이입하지 않으니까. 

 

이건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영광스러운 성취를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것 역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는 언제나 선하지 않으며,

때로 개인은 국가와 대립해야 하기 때문에.

 

 

3. 

'일본회의'의 전신인 단체에 있던 헌법학자는 아베의 개헌시도가 무서운 이유로 다음을 이야기했다.

"아베가 하려는 개헌은 '메이지 시대 헌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메이지 헌법에서 국가의 주인은 천황이다.

때로 우리는 인권을 위해서 국가와 싸우기도 해야 하는데,

메이지 헌법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인권이 국가와 대립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어떻게 감히 국가에, 정부에, 기업에게, 사장님에게, 부모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수 있어?

라는 입장을 우리는 노동/시민/소수자 운동 과정에서 수없이 듣게 되니까. 

 

 

4. 

미키 데자키 감독은 

시종일관 드라이한 어조로 영화를 이끌어가지만,

그의 차분한 태도와 달리 영화의 끝은 거대악과 맞닥뜨리는 결말을 맞이한다. 

 

'일본은 왜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가?'하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음지의 우익 단체 '일본회의'의 20년 동안 진행해온,

아니 그보다 먼저 사형선고를 받았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그의 외손자 아베에까지 이어오는

거의 100년에 가까운 음모와 계획이 드러나는 과정은 

마치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에서 최종 보스를 마주치는 것과 같은 순간이다. 

 

음모론 엄청 좋아하는 마이클 무어가 항상 본인의 다큐를 그렇게 

거대한 세력들의 음모가 이 세계 현상의 뒤에 있다는 결말로 끌고 가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국적 기업이라든가, 군수업체 같은 세력들이

하나의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 마지막에 가면 싱거워지곤 했었던 데 비해,

주전장은 별로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일본회의라는 확실하고 무서운 음모세력을 드러낸다. 

 

물론 그는 본인의 모국이라서 그렇게까지 큰 음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한국인인 나로서는 오싹한 결말이었다. 

 

미키 데자키가 영화를 보는 일본인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평화헌법을 수정하여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미국이 벌이는 의미없는 전쟁에 우리가 참전하게 된다. 그래도 좋은가?"라고 질문하는데,

일본계이자 미국인인 그의 상상력은 거기까지인 것이다. 

영화를 보고 일본회의의 실체를 알게 된 한국인인 나에게

아베정권 개헌의 최종목표는

'한반도 재침략과 지배'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한 20년 전쯤, 노마 필드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를 매우 인상깊게 읽었었다. 

책을 보고 일본의 군국주의가 일본 국민들에게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에서도 인권을 위해, 자신의 존엄을 위해 많은 시민들이 싸우고 있으며,

군국주의 일본과 지금의 일본은 다른 나라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20년이 지나 주전장을 보니, 일본은 그 때보다 더 뒤로 돌아간 것 같다.

노마 필드 역시 주전장 감독 미키 데자키처럼, 외부인의 시선으로 조국을 바라보는 일본인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아니면, 일본은 조국에 쓴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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