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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mur

할머니의 스몰토크

d u s t y s n o b 2019. 3. 9. 18:15

한국 사람들은 스몰톡을 안한다지만, 

한국 할머니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단 둘이 있게 될 때 

모르는 할머니들이 꼭 내게 말을 거신다.


오늘도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래층에서 탄 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보며 스몰톡을 시작하셨다.


“스카프를 두르고 나와야지 하다가도 매번 까먹고, 밖에 나와서 추우면 그제야 생각나네.” 

나는 그러시냐고 조그맣게 대답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스몰톡으로는 너무 무거운 말씀으로 훅 치고 들어오셨다. 

“늙으면 쓸모도 없고 죽기나 해야지. 아이구.”

아… 내가 뭐라 할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자, 

할머니는 똑같은 말을 한번 더 하셨다.


그래서 나는 미소만 짓다가 내릴 때, 

“보라색이 너무 잘어울리세요.”하고 입고계신 옷을 칭찬했다. 

사실은 ‘새하얗고 풍성한 백발과 보라색이 너무 잘어울려요’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만큼 우리는 친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아 뒷말은 삼켰다.


할머니는 “그래요? 고마워요.“하고 영혼없는 대답을 하시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앞서서 휙휙 가셨다. 

마치 축지법이라도 쓰신 것처럼 너무 빨리 가셔서, 

'늙으면 죽어야지'라던 아까의 엄살이 무색할 정도였다. 

 

아마도 할머니가 내게 원한 대답은

“아니에요. 더 오래 사셔야지요.” 라든가

“젊은 저도 맨날 깜빡깜빡 하는데요.”

이런 뻔한 위로같은 말들이었을지도.


하지만, 모르는 노인이 던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일상의 멘트에 

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런 위로를 아무렇지 않게 건네기에는 

우린 만난지 고작 일분밖에 안된 사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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