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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우쿨렐레

나의 포시

d u s t y s n o b 2019. 9. 2. 11:08

그동안 좀 아팠다.
크다면 크다 할 수 있는 수술을 하고,
다리도 다쳐서 못 움직이고
집에만 있으면서 마음이 점점 무너져내렸다.

나이를 먹으며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그렇게나 나약한 것이어서
배가 고프거나 몸이 아프면
금방 바닥으로 떨어져버리는 것이었다.

몸이 회복되고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오며
마음도 좀 챙겨보려고
우쿨렐레를 샀다.

택배로 우쿨렐레가 도착하기 전까지
두근두근해서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나 원래 택배에 설레는 타입 전혀 아닌데..

아마도 택배기사가 직접 전해줬다면
아저씨를 껴안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택배함으로 도착.

남편은 아끼는 것들에 이름 붙여주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남편의 기타는
‘파주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십여 년 전, 시골 같았던 파주 교외의 공방에
주문해둔 기타를 받으러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갔다.
당시 남친이었던 그는 설레는 표정으로
갓 건네 받은 반짝이는 기타에
파주댁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끼는 물건에 여자 이름을 붙이다니
나랑 싸우자는 건가.

이번에 도착한 우쿨렐레를 보더니
그가 이름을 붙여주자고 했다.
“포씨 어때?”
“난 남자 이름 붙일 건데.”
“제물포씨의 줄임말이야.”
헐... 난 주근깨 가득한 미국 소녀가 떠올랐는데
그런 아저씨 같은 작명이었다니.

어쨌든 그래서 내 우쿨렐레는 포씨가 되었다.
어디서 이야기할 때는
제물포씨라는 건 숨기고
고급지게 POSEY라고 발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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