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치즈 인 더 트랩’과 ‘내일도 칸타빌레’에 나오는 자취방을 비교한 기사를 보았다. (기사 링크) 복층에 그랜드 피아노까지 있는 화려한 설내일의 자취방과 달리, 비좁고 싸구려 세간살이가 가득한 홍설의 자취방은 가난한 대학생의 현실을 반영한 풍경이라며 칭찬한 글이었다. 나도 열광했던 부분이긴 한데, 홍설의 자취방을 단지 현실적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11년 전 ‘태릉선수촌’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이윤정 감독의 팬이 되었다. 장르 특성상 드라마는 스토리가 연출보다 더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연출자보다는 작가가 언제나 이슈의 중심이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PD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윤정은 발군이었다. 이윤정 감독의 키워드 두..
지난해와 올해에는 유난히 세상을 떠난 레전드들이 많아서... 이번 그래미 시상식은 추모공연의 물결이었다. 특히나 내가 좋아했던 뮤지션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는 건,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어쩐지 서글프다. 시상식 해설을 맡았던 배철수의 말처럼 이런 레전드들이 나올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까 싶다. 아무래도 20세기는 대중음악이 폭발하던 시기였으니까.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운명을 달리하던 날에는 하루종일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는데. 레이디 가가의 그래미 어워드에서의 추모무대를 보니 조금은 위로가 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무대가 아주 좋았다기보다는, 레이디 가가가 아니라면 누가 데이빗 보위의 트리뷰트를 하기에 적당한 뮤지션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푸파이터스의 데이브..
택이와 덕선이의 서사를 진행시키는 중요한 사건의 발단은 늘 동룡이었다. 워낙 사고뭉치이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는데, 어쨌든 동룡이 저지른 일 때문에 덕선과 택은 5인방 가운데서 떨어져 둘만 남게 되는 (둘의 의지가 아닌) 외부적 요인을 계속 만나게 된다. 덕선과 택의 아름다운 추억인 10화 ‘memory’편의 바닷가 씬은, 동룡의 가출에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이날 5인방이 다같이 바다에 갔지만 돌아오는 차에 자리가 모자라 덕선과 택은 낙오되고, 둘만 바다에 남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게 된다. 덕선이 처음으로 택이에게 보호받고 기대게 된 12화 바바리맨 사건은, 동룡이 친구들을 경양식집으로 불러들여서 생긴 일이었다. 여기서도 4명이 함께 갔지만 덕선과 택 둘만 복도에서 이 사건을 공유하게 된다. 유공연수..
얼마 전에 "대낮에 한 이별"의 버나드박x수지 버전과 조권x백아연 버전을 동시에 듣게 되었는데 버나드박과 백아연이 같이 부르는 걸 꼭 한 번 듣고 싶어졌다. 혼자서 소원 성취하려고, 둘이 부른걸 각각 따서 하나처럼 붙이는 잉여짓을 해봤다. 버나드 박은 K팝스타때부터 좋아했는데 여전히 너무나 좋고... 백아연은 와.. K팝스타 때보다 지금이 몇십배는 더 잘하는 것 같다. 그때는 그저 인어공주같이 예쁜 목소리의 귀여운 참가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목소리로 성장한 것 같다. 특히 하이노트에서 목소리의 비브라토는 완전...ㅠ_ㅠ
우리가 사랑한 것들을 떠나보내는 데는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진짜 지난번 뮤비만 만들고 끝내려고 했는데, ㅠ_ㅠ 또 맘대로 손이 움직여서 하나 더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잉여짓이 되길 바라며... 어린 나이에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독한 길을 걷게 된 택이지만, 항상 쌍문동 5인방과 함께여서 덜 외로웠다고 생각한다. 최택의 모델인 이창호 9단도 인터뷰에서 택이에게 친구가 많은 것이 부럽다고 하셨다던데. 특히 대국에서 지고 온 날, 다들 조심조심 택이의 눈치만 살피는데, 이 친구들은 거침없이 들어와 "너 발렸다며, 질때도 됐어"하고 면박주면서 "차라리 욕을 해"하고 택이를 터뜨려 주는 장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좋은 친구들이 있는 택이가 진심 부러웠다. 후반부에 남편찾기에 다들 ..
응팔 때문에 내 평생 처음으로 팬뮤비까지 만드는 덕질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뮤비를 편집하다가 불현듯 깨닫게 된 점이 있었다. 덕선이와 정팔이가 마주보고 웃는 투샷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둘만의 예쁜 장면도 좀 넣어주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정환이는 덕선이를 몰래 훔쳐보고, 뒤돌아서 웃음짓는다. 덕선이가 정환이를 향해서 웃을 때는 정환이가 딴 데를 본다. 둘은 시선을 마주치며 웃는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클립을 모아놓고 보니 전형적인 짝사랑男의 시선인 것이다. 반면에 택이와 덕선이는 주요 회차마다 둘이 마주보고 웃는 장면이 꼭 나온다. 정환이의 마음을 알게 된 택이 결국 고백을 포기하고 수면제를 먹고 잠으로 도망치는 16화의 엔딩을 보며, 둘이 이어지지 않을 것을 예감한..
‘응답하라1988’의 남편찾기 대장정이 끝나고 쏟아져 나온 기사들을 봤는데, 다들 예상치 못한 결말에 당황하는 듯하다. 사실상 정환이가 피앙세 반지를 던져놓고 가는 18화 엔딩에서 게임은 끝이었다. 그런데도 내 주변의 정환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19화에 반전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고, 20화가 끝나고는 “중간에 작가들이 남편을 바꾼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제기했다. 아무래도 정환이에게 감정이입을 한 사람들은 이 흐름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나는 3화까지는 좀 대충대충 봤다. 그랬던 이유는 1~2화에 ‘어머니의 죽음’ 같은 눈물 빼는 묵직한 에피소드가 연이어 나오는데 반해, 아직 캐릭터들이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은 상태라 몰입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환이의 서사에 깊이 빠지지 ..
응답하라 1988에 뒤늦게 빠져서 내가 평생 안하던 짓을 했다. 백만년만에 동영상 편집기를 열고, 팬메이드 뮤직비디오를 만든 것이다. 사실 나이로 따지면 '응답하라 1997'에 가깝고, 배경으로 따지면 '응답하라 1994'가 모교 배경이라 그 둘에 열광할 법도 했는데 크게 빠지지는 않았었다. '응답하라 1994'때는 동문들이 페이스북에 매일같이 응사 얘기로 달렸던 것 같은데 그때도 나는 별로 반응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랑 관련없는 응팔에 이렇게 빠지게 될지 몰랐다. 3회까지는 보다 말다 띄엄 띄엄 봐서 기억도 잘 안난다. 그런데 회차가 거듭될 수록 서서히 빠져들더니 16화가 끝나고 결방했을 무렵에는 아, 이게 흔히들 말하는 덕통사고라는 거구나 싶었다. 17화를 기다리는 2주 동안 가슴이 두근거리고 음악..